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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6

SPECIAL German Audio & Design

현대 산업 디자인의 역사와 함께한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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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는 산업 디자인의 개념이 탄생한 곳은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미국이다. 당시의 미국에는 거대한 기업과 자본, 다양한 계층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규모의 시장이 있었다. 게다가 전쟁의 포화는 피해가면서도 전쟁을 뒷받침하는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기업 주도의 경쟁이 이루어졌다. 즉, 미국은 산업 디자인이 발전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이 양질의 토양을 제공했다면, 그 씨앗을 퍼트린 것은 유럽이다. 전쟁을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온 유럽 출신의 디자이너와 디자인 교육자들이 초기 산업 디자인의 원류가 되었다. 그리고 독일은 산업 디자인의 역사를 들여다볼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나라다. 그만큼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분은 크다. 


소노로의 캐치프레이즈는 ‘German Audio & Design’이다. ‘독일제라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다. 자국의 브랜드 이미지에 웬만큼 확신이 없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마케팅이다. 실제로 세계 최고의 브랜드를 대거 배출한 ‘Made in Germany’에 대한 신뢰도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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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의 조화, 그리고 과거와의 연속성


지금은 예전보다 유연하게 바뀌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독일 축구대표팀의 선수 선발 시스템은 철저하게 원칙에 따라 운영됐다. 선수층을 경력과 나이에 따라 고참, 중고참, 신인으로 분류하고, 월드컵을 기점으로 4년에 한 번 1/3씩 교체했다. 여느 축구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 독특한 시스템은 보수적이지만 합리적으로도 보인다. 한편으로 독일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전체와의 조화, 그리고 연속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성어가 있다.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는 뜻이다. 이는 독일 산업 디자이너들의 인식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이념과 맥락을 같이 한다. 진정한 창조란 무작정 남이 하지 않는 것만 찾아 헤매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없는 것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독일 디자이너들의 인터뷰 자료를 보면 ‘과거와의 조화를 통한 새로움의 발견’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조화와 연속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위해서다. 대량 생산과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게 브랜드 이미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우아하고 감성적인 북유럽 디자인, 예술성과 공예를 바탕으로 한 이탈리아 디자인에 비해 독일 디자인은 간결하고 기능적이다. 때로는 너무 이성적이라 완고하고 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우직함은 소노로가 내세운 ‘Germany Design’ 자체가 하나의 확고한 캐릭터, 변치 않는 브랜드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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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근대 디자인의 역사를 바꾼 14년


독일 디자인의 역사는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된 예술교육기관 바우하우스(Bauhaus)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우하우스는 일반적인 디자인 학교가 아니었다. 교육 이념과 시스템 자체가 파격적이었다. 어디까지나 건축이 바탕이었고 창시자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도 건축의 거장이었지만, 예술과 공예의 결합이라는 목표 아래 조각, 회화, 공예, 인테리어 등 모든 예술 매체가 커리큘럼에 포함됐다. 즉, 분야 불문하고 창조적인 장인을 양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말이 있다. 19세기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Louis H. Sullivan)의 이 말은 현대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한 격언이다. 제품의 기능에 최적화된 디자인이야말로 좋은 디자인이고, 그것이 곧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는 의미다. 이는 바우하우스의 기본 철학이기도 했다. 당시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 여파로 온 나라가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였고, 부족한 여건에서 ‘원가 대비 품질’이 좋은 물건을 대량으로 찍어내야 했다. 따라서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최대한 배제한 실용적인 디자인에 집중하게 되었다. ‘기능주의에서 비롯된 합리적인 미학’이라는 바우하우스 특유의 양식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바우하우스는 예술가들을 ‘불온한 퇴폐주의자 집단’으로 몰아붙이던 나치의 등쌀을 견디지 못하고 1933년 14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이 14년은 독일, 더 나아가 근대 디자인의 바탕을 뒤엎을 만큼 위력적인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우하우스의 진짜 영향력은 오히려 폐교된 이후에 커졌다. 그로피우스를 비롯한 바우하우스의 교수와 학생들은 대거 미국으로 망명했고, 이들이 전파한 바우하우스의 이념은 미국의 자본주의와 만나 20세기 디자인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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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터 람스의 향수가 흐르는 소노로


전쟁과 나치 정권 때문에 대가 끊길 뻔했던 독일 디자인의 계보는 가전제품 브랜드 브라운(Braun)이 이었다. 산업 디자인을 현대적인 레벨로 끌어올린 주인공으로 늘 첫손에 꼽히는 브랜드다. 브라운에서 생산된 라디오, 면도기, 오디오, 영사기, TV, 전자계산기 등의 가전제품과 전동칫솔, 주방용품은 사람들에게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안겨주었다. 


‘브라운=독일 디자인’이었던 시기, 즉 브라운 디자인의 최전성기는 1950~1970년대 즈음이다. ‘적지만 더 나은 디자인(Less But Better)’을 모토로 내세운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의 전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시기와 일치한다. 1995년 서른 살의 나이로 브라운의 수석 디자이너가 된 람스는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키며 현대적인 산업 디자인의 표준을 세웠다. ‘바우하우스의 계승자’로 불리는 람스지만, 그가 자신의 디자인이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 밝힌 경우는 찾기 힘들다. 그러나 그의 디자인이 바우하우스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은 분명하다. 바우하우스가 기능과 형태의 관계에서 얻어낸 단순함과 우아함이라는 가치를, 람스는 실제 제품을 통해 실현했다.  


람스는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크리에이터이자 사색적인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물건이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대량 생산되는 제품이 지녀야 하는 올바른 자세’를 고민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했다.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람스의 작품에서 아이폰 디자인의 영감을 얻었다는 에피소드는 이제 질릴 정도로 유명하다. 무인양품, 이케아의 디자인에서도 람스의 DNA가 흐르고 있으니, 사실 현대 문명을 향유하면서 그가 남긴 흔적을 무의식중에 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21세기의 브랜드 소노로에도 바우하우스, 디터 람스로 대표되는 독일 디자인의 전통과 향수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게 흥미롭다. 



[Sonoro Brand Special]


① 라이프스타일 오디오계의 신성, 소노로

② German Audio & Design

③ 오랜만에 오디오가 온 가족의 중심이 되다

④ 프레스티지 200% 활용하기



Editor_최승우

swchoi@dnolt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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