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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BRAND STORY 브리온베가(Brionvega), 시대를 뛰어넘는 예술

반세기를 이어온 감각적인 디자인의 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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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인간의 감각기관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80% 이상이다. 심지어 맛있는 음식도 생긴 게 이상하다고 먹기 싫어지는 게 사람이다. 어떤 산업이든 제품과 디자인이 밀접한 이유다. 소비자가 눈길을 주었을 때 단번에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좋은 디자인은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도 힘을 잃지 않으며, 그 자체가 생명력을 가진다.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의 1955년작, 일명 ‘개미허리 의자’는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1932년 이후 미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지포(Zippo) 라이터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례들은 디자인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아름답고 실용적이면서도 사람들이 오래 간직하고 싶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의 전자제품회사 브리온베가(Brionvega)는 큰 발자취를 남긴 브랜드다. 브리온베가에게 디자인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었으며, 기업의 중대한 이념이었다. 그저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하고자 했다. 이들은 리처드 사퍼, 마르코 자누소, 카스틸리오니 형제 등 전설적인 디자이너들과 손을 잡았고, 산업 디자인 분야에 영원히 남을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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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가 사랑한 오디오


2016년 영국의 록 스타 데이비드 보위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같은 해 열린 영국의 미술품 옥션 회사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유품이 257,000파운드에 팔렸다. 당시 환율로는 한화 약 4억5천만 원이다. 


브리온베가에서 1966년 생산된 라디오 턴테이블 ‘RR-126 Radiofonografo(이하 RR-126)’가 그 주인공이다. 보위가 ‘뮤지컬 펫(Musical Pet)’이라 부르며 아꼈던 애장품이다. 얼마나 대단한 슈퍼 오디오인지 궁금해지겠지만, 사실 RR-126은 엄청난 스펙이나 억대의 가격을 자랑하는 시스템은 아니다. 턴테이블과 라디오, 스피커가 하나의 몸체에 들어 있는 일종의 올인원 오디오다. 백만장자 록 스타가 쓰기에는 의외일 정도로 소박하다.


그러나 보위는 단순한 록 스타가 아니다. 패션, 미술, 영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데뷔 이래 40년 간 한 순간도 뻔하게 살지 않았고,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유행을 선도했다. 보위가 1997년 매디슨 스퀘어가든의 50세 생일 공연에서 남긴 말은 그의 삶 자체다. “지금부터 내가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루하진 않을 거라고 약속한다.”


보위는 예술을 이해하는 남다른 안목의 소유자이자 수집가이기도 했다. 그는 단순히 유명하고 비싼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움직이는 예술품에 끌렸다. 브리온베가라는 브랜드가 남긴 빛나는 업적을 볼 때 보위의 눈은 정확했다. 그리고 명가 브리온베가에는 ‘데이비드 보위’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새롭게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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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디자인의 원형을 만들다


이탈리아에서는 미(美)가 최고의 가치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만큼 디자인 분야에서 이탈리아의 파워는 강력하다. 패션, 건축, 자동차, 인테리어 등 디자인이 필요한 거의 모든 영역에 뻗쳐 있다.


20세기 초중반은 이탈리아의 디자인이 그야말로 날개를 단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디자인을 중대한 기업 가치로 내세운 기업들이 나타나 흐름을 이끌었다. 이들은 기능 중심의 획일화된 제품을 벗어나 기술과 감성을 조화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인간의 삶 한가운데서 살아 숨 쉬는 ‘이탈리아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근대적인 산업 디자인의 원형이 구축된 것이다. 바로 그 중심에 있었던 브랜드가 브리온베가다.


브리온베가의 고향은 이탈리아 수작업 장인들의 산실인 밀라노다. 1945년 경영을 맡은 주세페 브리온(Giuseppe Brion)과 엔지니어 리온 파제타(Leone Pajetta)가 자신들의 이니셜을 딴 B.P.M(Brion Pajetta Milano)을 세운 것이 시작이었다. 원래 B.P.M은 무선부품을 제조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였는데, 1950년대부터 독자적으로 완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독일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이었다. 1960년에는 이름을 브리온베가로 바꾸었다. 베가(Vega)는 스페인어로 광야, 혹은 황야를 뜻한다.


주세페는 당시 보급이 확산되던 TV와 라디오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는 우수한 성능과 혁신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만든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렇게 해서 1962년 브리온베가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신호탄이자 유럽 최초의 트랜지스터 TV 도니(Doney)가 탄생했다. 뒤이어 1963년 알골(Algol) TV, TS-502 라디오 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산업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제품들이다. 이들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 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 상설 전시되며 디자인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당시의 가정에서 TV와 라디오는 거실에서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붙박이 가전이었다. 게다가 형태는 죄다 삭막한 직사각형이었고, 재질은 대부분 목재였다. 반면 플라스틱 신소재로 만든 브리온베가의 섬세한 아름다움은 독일과 미국 제품의 투박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또한 이때부터 TV와 라디오가 집안 곳곳으로 손쉽게 옮겨 다니게 되었다. 획기적인 디자인이 소비자들의 생활양식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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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온베가의 예술가들


브리온베가의 성공 비결은 최고의 디자인과 기술을 결합시키는 능력이었다. 여기에는 시대를 이끈 디자이너들의 힘이 있었다. 브리온베가는 언제나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했다. 마르코 자누소(Marco Zanuso)와 리처드 사퍼(Richard Sapper), 피에르 자코모 카스틸리오니(Pier Giacomo Castiglioni)와 아킬레 카스틸리오니(Achille Castiglioni) 형제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품의 기획 단계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즉, 디자이너들이 예술적인 재능을 최대한 펼칠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해주었다.


리처드 사퍼는 독일 출신이지만 밀라노에서 주로 활동한 디자이너다. 피아트, IBM, 메르세데츠 벤츠 등과 일하면서 수많은 걸작을 남겼고, 한때 스티브 잡스의 애플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한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특히 IMB의 전설적인 노트북 씽크패드(ThinkPad) 시리즈, 물이 끓는 정도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나는 알레시(Alessi) 주전자 등은 사퍼의 번뜩이는 천재성을 볼 수 있는 제품. 1964년 만든 브리온베가의 폴더형 라디오 TS-502는 21세기의 디자이너들도 깜짝 놀랄 만큼 미래적이다. 


마르코 자누소는 현대적인 디자인 개념을 확립한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산업 디자인뿐만 아니라 건축과 도시계획 등에서 활약하며 이탈리아 디자인에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사퍼와는 18년 동안 파트너로 동행했는데, 브리온베가에서 다수의 TV와 라디오를 만들어 히트시킨 것도 이 기간이다. 대표작으로는 이탈리아 명품 가구 브랜드 알플렉스(Arflex)의 레이디 체어(Lady Chair)가 있다.


앞서 말한 데이비드 보위의 애장품, RR-126을 디자인한 피에르 자코모 카스틸리오니와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형제도 있다. 원래 첫째 리비오와 둘째 피에르 자코모가 스튜디오를 시작했는데, 셋째 아킬레가 나중에 참여하고 리비오가 독립했다. 이후 두 사람은 피에르 자코모가 196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0여 년간 함께 작업했다. RR-126에서도 볼 수 있듯 이들이 만든 제품에서는 독특한 위트와 실험정신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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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제품을 만든다


브리온베가가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는 1960~70년대다. 이 즈음에 만들어진 제품들은 21세기의 기준으로 봐도 놀랍도록 감각적이다. 브리온베가의 제품들은 형태가 늘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기존의 개념을 뒤집는 파격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디자인을 단순한 취향이나 스타일의 수준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창조의 경지로 이끌었다. 심지어 브리온베가라는 브랜드는 오너가 바뀌는 등 굴곡을 겪었지만, 그 와중에도 디자인은 거의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유행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세상에서 50년 넘게 디자인이 유지되고 있다는 건 경이적이기까지 하다.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이자 작가 안드레아 브란지는 “제품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며 복합적인 상호 관계를 주고받는 독립적인 생명체”라고 했다. 브리온베가처럼 이 말에 어울리는 브랜드도 없다. 



Editor_최승우

swchoi@dnolt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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