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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6

FILM 독일이 현대 디자인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관련 다큐멘터리 두 편이 연달아 개봉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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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이 인간의 관심을 좌우한다.(Aussehen Beherrscht Die Attraktion Der Menschen)’ 



무슨 외모지상주의에 찌든 차별적 발언인가 싶겠지만, 독일 속담이다. 액면 그대로 듣기보다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격언 정도로 생각하면 적절하겠다. 이런 속담이 존재할 정도로 독일이라는 나라가 현대 디자인에 미친 영향은 강력하다.


같은 디자인 강국인 이탈리아의 디자인이 자유롭고 창조적이라면, 독일의 디자인은 합리적이고 질서정연한 성격을 띤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19세기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Louis H. Sullivan)의 유명한 슬로건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해온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전체와의 조화, 그리고 옛것과 새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속성에서 독일식 디자인의 진가가 드러난다. 독일의 디자인은 특정한 공간이나 사람이 아닌 도심의 환경과 삶 그 자체다. 


이런 독일 디자인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8월 개봉한다. 공교롭게도 며칠 간격으로 두 편이 연이어 극장에 오른다. 꼭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흥미롭고 유의미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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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터 람스>, 더 작지만 더 좋게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존경을 넘어 숭배하는 인물. 그가 바로 디터 람스(Dieter Rams)다.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람스의 작품에서 아이폰 디자인의 영감을 얻었다는 에피소드는 이제 질릴 정도로 유명하다. 그는 뛰어난 디자이너인 동시에 디자인의 윤리와 사회적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한 철학자이기도 했다.


디터 람스는 1932년 독일 비스바덴에서 출생했다. 1955년에 독일 가전업체 브라운(Braun)에 입사해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고, 1995년까지 오디오 시스템부터 TV, 계산기, 라이터 등 전 분야에 걸쳐 맹활약하며 전설이 되었다. 람스는 1997년 은퇴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시대를 가볍게 초월하고 있다. 사실 현대 문명을 향유하면서 그가 남긴 흔적을 무의식중에 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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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디터 람스>는 전설적인 디자이너의 업적을 늘어놓는 편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더 적게, 하지만 더 좋게(Less But Better)’라는 람스의 모토를 이어받아 영화도 간결한 압축과 생략에 집중했다. 그 결과 람스의 개인적인 삶부터 철학까지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디자인의 10가지 원칙’을 통해 디자인이 사회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디자인이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고민했던 그의 철학이 긴 여운을 남긴다. 8월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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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우하우스>, 세계를 바꾼 14년


<바우하우스>는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된 예술교육기관 바우하우스(Bauhaus)의 100주년을 맞아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바우하우스는 일반적인 디자인 학교가 아니었다. 교육 이념과 시스템 자체가 파격적이었다. 바탕은 건축이었고 창시자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도 건축의 거장이었지만, 예술과 공예의 결합이라는 목표 아래 조각, 회화, 공예, 인테리어 등 모든 예술 매체가 커리큘럼에 포함됐다. 즉, 분야 불문하고 창조적인 장인과 디자이너의 양성이 목표였다.


바우하우스는 예술가들을 ‘불온한 퇴폐주의자 집단’으로 몰아붙이던 나치의 등쌀을 견디지 못하고 1933년 14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이 14년은 독일, 더 나아가 근대 디자인의 바탕을 뒤엎을 만큼 위력적인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우하우스의 진짜 영향력은 오히려 폐교된 이후에 커졌다. 그로피우스를 비롯한 바우하우스의 교수와 학생들은 대거 미국으로 망명했고, 이들이 전파한 바우하우스의 이념은 미국의 자본주의와 만나 20세기 디자인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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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가 없었다면 아마도 책상, 의자, 전등 등은 지금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크게 보면 애플이나 이케아도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할 정도로 바우하우스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 단순한 학교를 넘어서 시대의 아이콘이 된 바우하우스가 남긴 흔적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8월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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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_최승우

swchoi@dnolt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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