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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수퍼 디자이너들의 놀이터 브리온베가(2편)
by 틴맨 posted   18-01-11 11:55(조회 8,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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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소더비 경매에 나온 물건 중 하나가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전설적인 로커 데이빗 보위가 사망함에 따라, 그의 컬렉션 상당수가 이 경매에 출품된 바, 그중 보위가 평소 “뮤지컬 펫”(Musical Pet)이라 부르던 오디오가 나온 것이다.


이렇게 쓰면, 억만장자 보위가 쓰던 오디오니 뭐 말만 하면 금세 수긍할 수 있는 초 하이엔드 브랜드의 제품이 아닐까 상상할 것이다. 아마도 MBL이나 부메스터의 풀 세트가 아닐까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턴테이블과 튜너, 앰프, 스피커가 하나의 몸체로 구성된, 이른바 장전축이다. 밀라노산이다. 아니, 보위같은 전위적인 록커가 무슨 장전축. 하지만 그 메이커가 브리온베가(BrionVega)라고 하면, 좀 안다는 분들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가 쓰던 제품의 정확한 모델명은 RR 126.(지금은 블루투스 기능이 더해진 RR 226로 진화했지만, 기본 설계나 만듦새는 동일하다) 무려 257,000 파운드로 낙찰되었는데, 당시 우리 환율로 4억5천만원이나 한다. 아무리 보위라고 해도 그렇지, 무슨 장전축 하나에 그런 거액을 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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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쪽 분야를 좀 안다는 분들은, 오리지널 RR 126이라면 그 정도 가격은 아니더라도 한번 컬렉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물론 그게 힘들다면 RR 226을 권한다. 그만큼 이 모델은 비단 하이파이뿐 아니라, 디자인의 역사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 제품의 탄생 연도는 1964년. 지금부터 50년이 넘는다. 그런데 지금도 생산이 되고 있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이 부분은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본 기를 탄생시킨 두 명의 디자이너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그 주인공은 피에르 지아코모 &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형제다. 그런데 이 형제의 가문이 흥미롭다. 부친 지아니노로 말하면 조각가고, 이 두 형제의 큰 형인 리비오도 역시 같은 계통에 있다. 즉, 세 형제가 모두 건축과 디자인 일을 한 것이다. 특히, 피에르와 아킬레의 콤비는 워낙 유명해서, 그들이 만드는 모든 디자인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할 정도다. 1960년대 이태리를 휩쓸다시피 했다. 


1960년대라고 하면, 이태리를 비롯한 서구 제국이 2차 대전의 참화에서 벗어나 차츰 경제적으로 도약할 시기다. 그런 와중에 단순히 공장을 짓고, 대량 고용을 하고, 국책 사업을 벌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 엔진에 가속을 붙인 연료가 바로 디자인이다. 특히, 이태리는 이 시기에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나왔고, 그중 일부가 브리온베가와 관련되어 있다.


이를테면 동사의 도니와 알골을 만든 마르코 자누소도 유명하지만, 그밖에 마리오 벨리니와 에토레 소트사스에 대해 언급하자면 책 한 권 분량으로도 부족하다. 특히, 소트사스는 1980년대 멤피스 그룹의 주창자이기도 해서, 그만큼 브리온베가에서 일한 디자이너들의 그레이드가 어땠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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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브리온베가는 꼭 이태리 디자이너만 고집한 것은 아니다. 리차드 새퍼나 마이클 영처럼 비 이태리인도 많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나오는 제품엔 브리온베가의 아이덴티티가 발견된다. 그 점이 이 브랜드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처음 브리온베가를 창립한 인물은 쥐세페 브리온과 에로네 파제타이다. 브리온과 파제타의 이니셜을 따서 B.P.M. 컴퍼니를 창립한 것이 1945년. 즉, 2차 대전이 막 끝난 시점이다. 이후 1960년에 브리온베가로 회사명을 정식으로 바꿔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중 파제타는 엔지니어. 아무래도 라디오며 TV, 앰프, 스피커 등을 만드는 가전 회사인 만큼, 테크놀로지에 대한 부분을 커버할 인물이 필요하다. 파제타가 이 부분을 커버했다. 반면 브리온은 경영과 디자인을 맡은 듯한데, 그 높은 안목으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을 섭외했다. 따라서 브리온베가의 진짜 강점은 이런 기라성 같은 디자이너, 이른바 수퍼 디자이너를 영입한 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퍼 디자이너(Super Designer)? 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의문을 표할 분들이 있을 듯싶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단순히 특정 제품을 멋지게 디자인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전체 사회의 분위기와 휴머니즘, 공공성 등을 고려해서, 전체적인 문명의 질을 높이는 것과 관련된다.


말하자면 수퍼 디자이너쯤 되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버스 정류장이나 기차 역 등 공공 시설의 설계에도 관여하고 심지어 도시 기획에까지 담당하게 된다. 전술한 브리온베가의 디자이너 리스트는 바로 수퍼 디자이너의 리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자누소같은 분은 도시 기획자로도 큰 업적을 남긴 바 있으며, 카스틸리오니 형제는 2차 대전 때 부숴진 궁전을 복원하는 일을 했으며, 소트사스는 디자인계에 일종의 혁명을 일으킨 멤피스 그룹을 주도했다.


바로 이런 거장들이 만든 물건이기 때문에, 브리온베가의 제품은 탄생한지 50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전세계에서 팔리고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산업 디자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공부하려는 생각이 있는 분들에겐 꼭 거쳐야 하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흔히 이쪽 분야로 말하면 나이키나 코카콜라를 떠올리는데, 바로 그런 맥락에서 브리온베가는 중요한 브랜드인 셈이다.


사실 나이키나 코카콜라는 끊임없이 제품 디자인을 바꿨다. 그에 반해 브리온베가는 마크가 아닌 제품 그 자체로 승부하고 있으므로, 최신의 블루투스 기능 정도를 더할 뿐, 외관엔 일체 변화가 없다. 아마 이런 메이커는 전세계에 흔치 않을 것이다.


<리뷰어 이종학><3편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