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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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 VK-55SE Power-Amplifier
by 틴맨 posted   14-06-05 14:27(조회 8,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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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냉전 시대에 일본에서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별 이유도 없이 소련제 미그기가 사고로 추락한 것. 당시 베일에 가려있던 소련의 군수 산업의 실체, 특히 미그기가 갖고 있는 가공할 만한 능력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파견되어 낱낱이 미그기를 분석한 결과, 우리와 관련된 물건이 하나 나왔다. 바로 6C33C-B로 소브텍사가 만든 진공관이었다.

이 진공관은 군수용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아주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다. 일단 내부 저항이 낮고, 비교적 많은 양의 전류를 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의 오디오계에선 알게 모르게 이 출력관을 소련에서 밀수(?)해서 쓰고 있었다. 이른바 OTL 앰프의 제작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OTL? 이게 무슨 뜻인가? 원래는 ‘Output Transformer Less’의 약자로, 한 마디로 진공관 앰프에서 출력 트랜스를 없앤 것이다. 아니, 그게 가능이나 한가? 원래 진공관은 내부 저항이 높다. 보통 1K 오옴 이상이 나온다. 말하자면 효율이 되게 낮은 것이다. 일례로 EL34를 OTL 싱글로 설계해서 8오옴짜리 스피커에 연결했다고 치면, 고작 0.045%만 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99.99% 이상이 그냥 열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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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출력관 6C33C-B

그러므로 이와 연결되는 출력 트랜스에서 1차 및 2차 방식을 통해 진공관의 내부 저항을 극적으로 낮춘다. 1차에선 진공관에서 나온 출력을 받고, 2차에서 4, 8, 16오옴 하는 식으로 통상적인 스피커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디오의 기본 상식 중 하나로, 신호 전달 과정에서 뭔가 계속 개재를 하면, 그만큼 음질 열화가 발생한다. 특히, 출력 트랜스는 진공관 앰프의 효율을 높여서 다양한 스피커를 구동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그만큼 음질 열화에도 기여한다. 특히, 답답한 고역과 막힌 듯한 저역은, 진공관 혐오자들의 공격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6C33C-B가 발견됨에 따라, 진공관 앰프의 역사는 극적으로 변화한다. 특히, 소련이 해체된 이후, 양질의 관들이 서방 세계에 유입됨에 따라, OTL 앰프를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큰 환영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와 아예 소련에서 전자공학을 연구하던 빅토르 코멘코(Victor Khomenko)가 미국으로 건너와 BAT를 창업함에 따라 이 관의 역할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럼 본 기에 투입된 6C33C-B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우선 내부 저항이 작으므로 다른 5극관들을 푸시-풀로 설계한 것과 같은 출력을 자랑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관이 3극관이라는 것이다. 흔히 300B, 2A3 등으로 기억되는 맑고 투명하고 감칠 맛나는 3극관의 장점을 갖고 있으면서, 5극관만이 가능한 강력한 스피커 구동력을 아울러 갖춘 것이다. 게다가 KT88이니, EL34처럼 자주 쓰이는 5극관들은 내부 저항이 높기 때문에 출력 트랜스의 디자인이 복잡해진다. 그에 비하면 6C33C-B는 보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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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T의 창립자 빅토르 코멘코

한편 설계상의 신기술도 주목할 만하다. 대략 진공관 파워는 푸시-풀이나 싱글 엔디드로 하는 것이 상식이다. 전자는 주로 5극관 후자는 주로 3극관을 쓴다. 그러나 본 기는 다르다. 풀 밸런스 회로를 채택해, 채널당 2개의 싱글 엔디드를 쓴다. 말하자면 +, - 회로에 각각 하나의 싱글 엔디드가 투입된 것이다. 그러므로 스테레오 사양일 경우, 총 네 개의 싱글 엔디드가 만들어지며, 이것이 최종적으로 출력 트랜스를 통해 조정되는 것이다.

단 이 과정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출력 트랜스를 만들 수 있으니 되도록 대역폭이 넓고, 왜곡이 적은 설계가 가능하다. 그럼 왜 OTL로 만들지 않냐 되물을 법도 한데, 이 방식은 안정성에 문제가 좀 있다. 아무리 설계를 잘 했어도 전기적인 트러블이 생기면, 바로 출력관이 몽땅 타버리거나 망가진다. 한 마디로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출력 트랜스의 장점을 살리면서 그 폐해를 최소화 한 본 기의 설계가 오히려 추천할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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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T VK-55SE 파워 앰프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VK-55SE는 현재 BAT의 진공관 파워 앰프 라인으로 볼 때, 렉스(REX)의 바로 아래에 있다. 그러나 단순히 VK-55의 설계를 답습하지 않고, 오히려 상급기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흡수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전설의 출력관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과 또 진공관 파워 앰프가 갖는 단점을 두루두루 극복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제품이라 하겠다.
여기서 우선 언급할 것이 게인단의 설계다. 일단 전작을 보면, 6SN7을 네 개 배치한 구성으로 게인단을 구성했다. 물론 이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본 기는 한 발 더 나갔다. 두 개의 스테이지로 나눠서 6SN7 2개, 6922 2개 그리고 6H30을 2개 동원했다. 이 세 종류의 관을 다양하게 투입하면서 고도로 복잡한 음질 튜닝까지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전작보다 풍부하고, 다채로운 음을 들을 수 있다. 

특히, 6H30은 일종의 슈퍼튜브라고 불리는 바, 동사의 프리 앰프에 주로 채용되었다가 렉스 2 파워 앰프에 처음으로 접목되었다. 그 기술을 고스란히 본 기에 담은 셈이다. 많은 양의 전류를 흘릴 수 있으므로, 그만큼 안정적인 구동이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렉스 2 파워 앰프에 투입된 오토 바이어스 기능을 담은 부분도 주목해야 한다. 잘 알다시피 출력관의 경우, 격년변화가 제일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아서 바이어스 조정을 해야 하는 게 진공관 파워 앰프의 숙명이다. 이것을 스스로 알아서 조정하는 쪽으로 만들었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가. 게다가 그때그때 변화하는 전압의 상태를 반영해서 역시 미세 바이어스 조정까지 가능하니, 그럴 경우 출력관의 컨디션은 늘 최고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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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T VK-55SE의 후면

한편 본 기는 전원부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특별히 따로 전원부를 구성하지는 않았지만, 캐패시터의 용량을 늘려서 순간적으로 보유한도를 증가시킨 것이다. 그 덕분에 전작 VK-55보다 무려 5배의 크기를 자랑한다. 이와 연관되어 캐패시터의 퀄리티 자체를 바꿨다. 기존에는 폴리프로필렌 계열이었지만, 이번에는 렉스 2 파워에 쓰인 페이퍼 오일을 투입했다. 이것은 단순히 단가나 용량의 차원이 아니라, 음 자체에도 큰 변화를 초래한다. 더 자연스럽고, 밀도가 높은 음이 가능해진 것이다.

출력을 보면 8오옴에 55W를 낸다. 이 자체로만 보면 전작과 다름이 없고, 무려 80W까지 내는 상급기와 비교도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출력을 너무 높이지 않는 편도 좋다고 본다. 출력관 자체가 받는 스트레스를 훨씬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출력을 높이기 위해선 많은 고안과 보완책이 뒤따라야 하니, 그만큼 제작 단가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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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T VK-55SE는 전원부를 따로 구성하지는 않았지만, 캐패시터의 용량을 늘려 보유한도를 늘렸다.

또 이 정도 출력이면 웬만한 스피커는 다 구동이 된다. 게다가 모노 블록으로 변환할 경우, 110W로 올릴 수 있으니, 얼마든지 업그레이드의 여지도 남아 있다. 이번 시청에는 토템의 포레스트 시그너처를 동원한 바, 한 마디로 스피커를 꽉 움켜쥐고 갖고 노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아발론의 중급기 정도까지는 무난하게 커버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프리 앰프는 이와 커플링되는 VK-33SE를 썼고, 소스는 크렐의 사이퍼를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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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멸차면서 단아하고 또 심지가 곧다.
당연히 악단을 이끄는 기세나 힘이 느껴져,
이와 커플링되는 오케스트라의 움직임이 순발력있게 맞아떨어진다"

첫 곡으로 들은 야니네 얀센 연주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일단 골격이 단단하고, 음장이 확고하다. 일체의 빈틈이 없는 야무지고, 튼튼한 음이다. 바이올린으로 말하면 지나치게 엷지 않고, 그렇다고 뭉뚱거린 음도 아니다. 야멸차면서 단아하고 또 심지가 곧다. 당연히 악단을 이끄는 기세나 힘이 느껴져, 이와 커플링되는 오케스트라의 움직임이 순발력있게 맞아떨어진다. 서로 주거나 받거니 하는 모습이 일목요연하다. 특히, 저역의 양감이 뛰어나 투티에서 가볍게 바닥을 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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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하고 폭발할 때의 펀치력이 일품이어서,
스피커 사이즈를 훨씬 상회하는 강력함이 포착된다.
웰터급 정도의 복서가 미들급의 파워를 갖고 있다고 할까?"

정명훈 지휘의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중 행진>. 초반에 서서히 큰북이 고조되어 나타날 때, 그 강약의 사이즈가 명확하고, 점차 압박해오는 기세가 대단하다. 특히, 쾅 하고 폭발할 때의 펀치력이 일품이어서, 스피커 사이즈를 훨씬 상회하는 강력함이 포착된다. 웰터급 정도의 복서가 미들급의 파워를 갖고 있다고 할까? 다양한 악기들의 눈부신 향연이 스피커 주위로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고, 대역도 비교적 넓다. 특히, 중역대의 빼어난 밀도감은 묘한 중독성까지 준다. 한 마디로 가슴이 후련해지는 재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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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베이스를 치면서 흥얼거리는 패럿의 거의 야생마 같은 움직임이나
다소 호색한의 느낌을 주는 신명난 테너 색스폰의 솔로 등
온갖 악기와 보컬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니키 패럿이 부른 <Dark Eyes>는 약간의 녹음 퀄리티가 떨어지는 대신, 악기나 보컬의 기세가 대단한 음원이다. 그러므로 너무 정교 치밀하게 묘사하다 보면 그 단점이 걸리적거리지만, 이렇게 적절한 힘이 동반된 재생에는 더 없이 매력적이다. 더블 베이스를 치면서 흥얼거리는 패럿의 거의 야생마 같은 움직임이나 다소 호색한의 느낌을 주는 신명난 테너 색스폰의 솔로 등, 온갖 악기와 보컬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장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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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적 근육질을 자랑하는 롤린스의 블로잉은 시청실을 장악할 기세로 다가오고,
불을 뿜는 드럼의 박력은 피를 끓게 한다"

마지막으로 소니 롤린스의 <St. Thomas>. 무려 60년이나 된 녹음이지만 일체의 편집이나 오버 더빙을 하지 않은 음원은 지금 들어도 생생하고 또 박력만점이다. 남성적 근육질을 자랑하는 롤린스의 블로잉은 시청실을 장악할 기세로 다가오고, 불을 뿜는 드럼의 박력은 피를 끓게 한다. 일체의 거리낌 없는, 그야말로 쾌도난마의 질주는 이 멋진 한 바탕의 세션이 왜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지 다시금 충분히 깨닫게 해준다. 과연 전설의 명관이 내는 맑고 투명한 중고역에 박력 넘치는 저역은 역시 명불허전. 이런 음이 흔치 않아 두고두고 뇌리에 남을 것 같다.

Specification
Output per channel at 8Ω/4Ω: 55W / 55W
Conversion to Mono?: Factory or Wire Kit
Output in Mono Configuration 8Ω/4Ω: 110W / 110W
Frequency Response: 8Hz to 200kHz
THD at full power: 3.0%
Input Impedance - stereo version: 215 kΩ
Input Impedance - mono version: 108 kΩ
Gain(Nominal into 8Ω): 25dB
Tube Complement: 2x6H30, 2x 6SN7, 2x6922, 4x6C33C-B
Number of Power Cords: 1
Remote Control: No
Power Consumption(Idle/Full Power): 400W/800W
Dimensions(WxHxD): 431 x 203 x 406mm
Weight: 22.7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