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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혁신을 말하다. 오디오 리서치 Reference Anniversary
by 틴맨 posted   13-05-31 17:31(조회 12,712)

Audio Research 
Reference 40 Anniversary Preamplif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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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오디오 리서치에게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 진정한 보수와 개혁, 혁신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보수, 부실에 빠지다. 
 
오디오 리서치는 지난 40여년간 진공관이라는 주제 하나로 회사를 운영해온, 모양새로 보자면 지극히 꼴통 보수라 할 만한 오디오 업체입니다. 게다가 지난 2004년을 즈음해서는 경영난으로 결국 외부 자본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버렸죠. 현재 이 회사를 소유한 것은 이탈리아 자본으로 설립된 Fine Sounds SpA라는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그룹입니다. 윌리엄 제인 존슨이라는 유능한 엔지니어가 1970년에 설립하여 세계적인 앰프 업체로 키웠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에 밀려 회사의 존폐 여부를 논하는 어려움까지 처했지만 외부 수혈을 받으며 회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외부 자본 세력은 회사의 리모델링 보다는 회사의 자체적인 개선과 혁신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마케팅과 세일즈 부분은 전문적인 인력을 새로 투입하여 판매 시스템을 바꾸었지만, 제품의 기획과 엔지니어링은 오디오 리서치의 본래 엔지니어 및 인력들이 그대로 유지하도록 한 것이죠.
 
덕분에 오디오 리서치는 대한민국의 IMF 극복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정상화가 되었고,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로서 지속적인 명성을 유지하며 안정된 하이엔드 업체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변화와 혁신을 찾아서 
 
새 자본과 뛰어난 엔지니어링이 결합은 오디오 리서치의 Reference 시리즈의 대대적인 변신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사용해왔던 진공관들과 회로들을 과감히 버리고, 전혀 다른 기준의 진공관과 새로운 회로 그리고 기존에 오디오 리서치에서 사용하지 않은 하이엔드적인 발상들을 제품에 불어넣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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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3 preamplifier>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이 Reference 시리즈의 프리앰프죠. 과거 SP 시리즈로 유명세를 치르던 이들의 진공관 프리앰프는 오랜 세월 롱런은 했지만 이미 하이엔드 프리앰프 시장에서는 올드패션으로 낙인찍힌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Fine Sounds의 투자 이후, 많은 업체들이 사용하고 있던 6922 이나 12AX7 같은 초단관들과 이런 관을 쓴 회로를 접었습니다. 대신 6H30이라는 새로운 진공관으로 회로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기존 제품들과는 다른 부품을 투입하며 오디오 리서치의 뉴 사운드를 만들게 됩니다. 2006년 등장한 Reference 3는 혁신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을 만큼, 롱런의 성공 뒤에 올드한 이미지를 떨치지 못한 Reference 2 시리즈 프리앰프를 단번에 저 세상으로 보내버렸습니다.
 
Reference 3에서 얻은 세계적인 오디오 매거진들의 찬사와 실제로 많은 판매량을 거두며 40년 전통의 진공관 앰프 업체는 스스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Reference 시리즈의 앰프들이 모두 새로운 회로와 새로운 진공관 그리고 하이엔드급 신형 부품들이 탑재되며 하나씩 신제품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Reference 3는 다시 2010년 Reference 5가 되면서 대대적인 전원부의 리모델링과 회로 자체의 개선으로 프리앰프 업계에서 진정한 레퍼런스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단편적인 사례로, 와트퍼피로 유명한 윌슨 오디오의 데이브 윌슨이 자신의 집 2층에 있는 최종 리스닝 테스트 공간이자 자신의 리스닝 룸의 메인 프리앰프로 오디오 리서치의 Reference 5를 사용한 것만 봐도 누구나 Reference 5의 퍼포먼스가 얼마나 뛰어난지 예측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0년의 역사를 기념하다, Anniver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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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5~6년에 걸친 오디오 리서치의 혁신적인 변화는 2011년에 결정타를 날리게 됩니다. 바로 Reference 40 Anniversary(애니버서리) 프리앰프의 등장이 그것이죠. 애니버서리는 1982년에 등장한 오디오 리서치 최초의 2피스 섀시로 제작된 SP10 프리앰프 등장이후 30년 만에 등장한, 전원부와 오디오 회로를 분리한 2개 섀시 구조의 프리앰프입니다. 아쉽게도 회사의 창업이자 만년까지 기술 개발에 참여했던 윌리언 제인 존슨은 이 앰프를 끝으로 2011년 겨울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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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리서치 최초의 2섀시 구성의 프리앰프 SP-10 (1982) >

40주년을 기념하는 이 앰프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자사의 역사를 기념하는, 포장만 그럴싸한 제품이 아니라, 오디오 리서치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방식을 대대적으로 투입하며 새로움을 찾으려는 시도가 가장 많이 담긴, 자기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프리앰프의 사운드는 세계적인 평론가들로부터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애니버서리의 회로가 Reference 5 프리앰프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기본 회로 구성은 흡사하지만 애니버서리는 전원부의 설계를 제품 밖으로 빼내 별도의 섀시로 만들면서 새로운 진공관 앰프 회로로 애니버서리의 전원 회로를 설계했습니다. 프리앰프에 사용한 6H30으로 오디오 리서치의 기존 앰프에서 많이 사용했던 6550C 출력관을 구동시키는 앰프 회로로 정류 회로를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좌, 우 채널용 정류 회로와 전원 트랜스포머를 분리하고, 저전압용 트랜스포머와 고전압용 트랜스포머를 채널마다 하나씩 넣어 전원 용량과 용도에 맞춰 전원부를 따로 설계한 점도 이채로운 부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오디오 리서치 제품에서 찾아볼 수 없던, 테플론 소재의 콘덴서로 바이패스용과 커플링용으로 사용한 것도 완전히 새로운 점이었죠. 특히 부품 1개당 무게가 1kg이나 되는 40주년의 테플론 콘덴서는 엄청난 크기와 무게로 섀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점도 애니버서리 앰프가 주목을 받는데에 크게 일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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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erence 40 Anniversary Power Supply(좌) / Amplifier (우) >

Reference 40 Anniversary 프리앰프는 Reference 3에서 이어온 앰프의 기본 회로 토폴로지를 완전히 버리고 새로 고치지 않았음에도, 꾸준한 개선과 지금까지 40년 역사의 진공관 앰프 업체가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의 기술을 적용하여 오디오 리서치의 사운드를 혁신적으로 변신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세계적인 평가와 완판이라는 판매량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이 앰프의 투명한 사운드는 단순히 디테일만 좋은 것이 아니라 전체 사운드 스테이지를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극도로 클리어한 상태로 만들면서도 반도체 앰프들에서 나타나는 고역의 에지감이나 깔깔한 느낌이 없는, 진공관의 매끈함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기존의 진공관 앰프 특히 오디오 리서치의 구형 앰프들에서 나타나는 호방하지만 둔중한 느낌을 지울 수 없던 사운드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초하이스피드의 사운드에 진공관의 아름다운 음색과 매끄러운 질감을 양립시켜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던 것이죠. 하지만, 애니버서리라는 제품의 기획 의도에 맞춰 제품의 완판과 더불어 오디오 리서치는 그대로 Reference 40 Anniversary는 역사 속으로 묻어버리게 됩니다. 미처 구매하지 못한 오디오파일들은 이 제품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되었죠.
 
대신, 오디오 리서치는 애니버서리에서 얻은 초하이엔드에 대한 다양한 기술과 경험을 기존 Reference 시리즈에 전이시켜 Reference 시리즈를 다시 한번 그레이드를 올리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1년에 걸친 애니버서리 유전자 이식 수술을 거쳐 Reference 시리즈의 프리앰프와 파워 앰프는 재탄생하게 되면서 Reference 5 SE 프리앰프와 Reference 250 모노 블록 파워 앰프라는 새로운 제품이 탄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두 신제품에 대한 리뷰나 평가는 앞으로 제가 담당해야할 몫이기에 아직 본격적인 평가는 하지 못했지만, 2년전에 들었던 Reference 40 Anniversary의 추억과 그 기술이 사용되었다는 내용 만으로도 이들 두 신제품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넘치고도 남습니다.
 

진공관에서 혁신을 찾다 
 
다시 서두로 돌아갑니다. 지난 40여년간 진공관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버리지 않고 유지해온 보수의 아이콘인 오디오 리서치는 여전히 진공관 앰프를 만들면서도 매킨토시와는 다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하이엔드 사운드 컬러를 제대로 찾아냈고 훌륭한 완성도와 사운드 퍼포먼스로 오랜 오디오 리서치 유저 뿐만 아니라 젊은 최신 오디오파일들의 귀까지도 빠져들게 만드는 멋진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말로만 떠드는 보수, 거짓으로 포장한 진보나 혁신이 아니라 바로 몸소 행동으로 결과로 보수의 존재, 혁신의 정의를 직접 보여준 사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에어의 KX-R 프리앰프를 사용하고 있지만, 당시 들었던 오디오 리서치의 Reference 40 Anniversary 프리앰프의 사운드가 떠오르네요. 모 해외 평론가의 말처럼, 반도체에서 진공관 사운드의 장점을 추구한 앰프가 에어라면 진공관을 통해 반도체의 장점을 구현한 앰프가 오디오 리서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업체의 목적지는 하나로 수렴되고 그 정점에 바로 KX-R와 Reference 40 Anniversary가 있다고 결론을 내더군요. 오디오 리서치의 현주소와 내용을 알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평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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