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 ETC
  •  
DECCA Connections
by 틴맨 posted   14-12-30 00:33(조회 60,967)

folder.jpg

DECCA Connections 
데카 커넥션즈 


데카(Decca)를 아십니까? 클래식 마니아 또는 LP 좀 사 모은 하이파이 애호가라면 단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울 이름이 바로 데카일 것이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EMI 나 소니 같은 레이블이 훨씬 더 친숙한 레코드 회사 이름이겠지만 음악 좀 들었다는 사람들이라면, 특히 클래식 아날로그 황금기를 최고로 치는 사람이라면 단연 데카를 최고로 손꼽을 것이다. 

오랫만에 올리는 이번 컬럼은 오디오 대신 영국 클래식 레이블인 데카의 음반 한 장을 꼽아봤다. 선택된 음반은 차이코프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이다. 연주는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한 로열 콘체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oyal Concertgebouw Orchestra)다. 차이코프스키는 6개의 교향곡 중 4, 5, 6번 교향곡이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어 이 곡, 만프레드 교향곡은 그다지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작곡자 본인이 가장 심신이 건강한 시절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곡으로 작곡 시기는 4번 교향곡과 5번 교향곡 사이에 작곡된 곡으로, 이 곡을 만든 뒤 자기의 수명이 1년이나 줄어들었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한다. 

곡은 바이런의 극시(劇詩)(또는 시극이라고도 하는) <만프레드>를 주제로 만든 표제 음악으로 악장의 형식은 일반 교향곡과 같은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나 리스트의 <단테 교향곡>, <파우스트 교향곡>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적인 표제 음악 교향곡으로 불리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곡에 대해 그다지 큰 감흥이나 감동, 교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대신 가끔 이 곡을 듣는 이유는 순전히 녹음 때문이다. 바로 스테레오의 역사라 할 수 있는 데카의 사운드를 그대로 보여주는 음반이기 때문이다. 

이 곡의 녹음을 담당한 녹음 및 밸런스 엔지니어는 데카 레코딩 역사의 마지막 세대라 할 수 있는 존 던커리(John Dunkerley)다. 그는 60년대부터 데카의 엔지니어로 입사하여 로이 월래스, 케네스 윌킨슨이 만들어낸 데카 사운드의 황금기를 고스란히 몸과 머리로 체득한 데카의 엔지니어였다. 케네스 윌킨슨의 아래에서 데카 최고의 명반들을 유럽과 미국을 돌며 몸으로 뛰며 레코딩 작품들을 만들어냈기에 화려하고 광대한 데카 사운드의 모든 것을 터득할 수 있었다. 존 던커리는 70년대부터 많은 녹음을 직접 담당했지만, 그의 사수이자 스테레오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케네스 윌킨슨이 80년대 초에 데카에서 은퇴하며 윌킨슨을 대신하며 80년대의 데카 명반의 상당수가 그의 존 던커리의 손으로 완성되었다. 

KWvsJD.jpg

<케네스 윌킨슨(좌, 안경쓴 엔지니어)와 존 던커리(우)>


그의 녹음이 뜻깊은 의미를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디지털 레코딩이기 때문이다. 윌킨슨이 은퇴하던 80년대 초반에는 이미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녹음 기술들이 전환되며 상당한 시행 착오가 있었다. 디지털의 장점인 깨끗하고 또렷한 사운드에 심취한 많은 디지털 초기 녹음들은 음악은 사라지고 건조한 음질만 남는 오류로 가득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결국 디지털에서도 아날로그 녹음에서 사용했던 마이크 배치와 믹싱 기술들이 디지털 녹음 기술에 이식되며 훌륭한 스테레오 녹음이 디지털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존 던커리가 만든 이 음반 <만프레드 교향곡>은 데카의 황금기와 디지털 사운드가 하나가 되는 멋진 이상향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Beethoven.jpg
< 아쉬케나지와 펄먼이 연주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은
케네스 윌킨슨과 존 던커리가 녹음한 유명한 데카의 명반 중 하나다.>
 


이 음반 <만프레드 교향곡>은 표제 음악답게 음악 자체는 클래식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영화 음악적인 요소가 많다. 존 던커리는 그러한 음악적 특징을 녹음에 멋지게 녹여냈다. 마치 화려한 컬러의 시네마스코프 영화의 와이드한 영상을 보듯 좌우로 화려하게 펼쳐지고 무대 앞 뒤의 깊이가 3D 영화를 보듯 입체적으로 그려진 놀라운 입체적인 스테레오 음향을 선사한다. 거의 30년 전 디지털 녹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마치 레퍼런스 레코딩스의 최신 녹음에서나 즐길 수 있을 법한 와이드한 다이내믹 레인지와 입체적인 사운드스테이지가 겸비된 최고의 스테레오 녹음이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FFRR 과 FFSS 같은 데카의 역사를 디지털 시대에서 다시 한번 보여주는 듯한 최고의 스테레오 음향을 만끽할 수 있다. (데카의 음향과 역사에 대해서는 논문 한 권을 써야 할 주제다. 이에 대해 관심 많은 오디오파일이라면 음반 평론가인 박성수씨가 쓴 ‘데카 클래식 사운드의 모든 것’ 이라는 책을 꼭 필독해보길 권한다.)


Riccardo-Chailly-c--Decca---Gert-Mothes.jpg

< 이 음반이 발매된 해로부터 이후 16년간 콘체르트허바우를 이끈 리카르도 샤이>


이 음반 <만프레드 교향곡>이 발매된 1988년부터 리카르도 샤이는 콘체르트허바우의 상임 지휘자가 되어 16년 동안 전임 하이팅크때와는 다른 새로운 RCO 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존 던커리는 그와 함께 많은 디지털 레코딩으로 화려한 또 하나의 데카 사운드의 시대를 이끌었다. 존 던커리는 97년을 끝으로 데카에서 은퇴했다. 케네스 윌킨슨의 뒤를 이은 데카 사운드 계보를 이은 엔지니어로서 데카의 역사는 거기서 끝났지만 존은 그것으로 커리어를 접지 않았다. 

데카에서 수 십 년간 이루어 놓은 데카 사운드의 역사 그리고 레코딩과 마스터링, 밸런스 엔지니어로서의 감각과 기술력은 그가 단순한 녹음 엔지니어가 아니라 녹음 및 음반 제작 스튜디오의 시작에서 끝까지 모든 것을 그의 손으로 다루는, 요즘 시절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머리와 몸으로 얻어낸 지식과 실전 노하우가 가득했다. 존 던커리의 재능이 꽃피워진 또 다른 분야는 스튜디오 모니터와 스튜디오 설계에서도 빛을 발했다. 50년대부터 시작된 탄노이 모니터와 데카 스테레오 레코딩에서 80년대 시작된 디지털 레코딩과 B&W 모니터 스피커로 이어진 그의 감각과 경험은 90년대 중반부터 B&W 스피커 제작에 참여하는 B&W의 컨설턴트로 일했다. 거의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데카와 B&W의 스피커 설계에 힘을 쏟은 것이다. 

imageResize.jpg
<존 던커리가 스튜디오 커넥션즈로 재설계한 애비로드 마스터링 스위트 룸>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데카와는 경쟁적인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애비로드 스튜디오에도 그가 관여한 점이다. 물론 그가 데카에서 은퇴한 이후의 일이긴 하지만, 그는 데카와 B&W 에서 보여준 기술과 경험으로 애비로드 스튜디오에도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사운드 조정과 튜닝, 스튜디오 설계를 맡았다. 그는 지인이던 마이클 화이트사이드와 함께 90년대말부터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유지 보수 작업을 맡았고, 2003년에는 애비로드의 메인 스위트 룸을 새롭게 디자인하여 녹음 환경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B&W의 모니터를 사용하고 애비로드를 위해 직접 케이블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 결과 B&W의 노틸러스 800 모니터 스피커들과 그가 만든 스튜디오 커넥션즈(Studio Connections)의 케이블들이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레퍼런스가 되었고 지금까지 애비로드에서 제작되는 수 많은 음반과 녹음들이 B&W 스피커와 스튜디오 커넥션즈 케이블들로 완성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작년 겨울에 국내 하이파이 레코딩 스튜디오 중 한 곳인 오디오가이 측에서 새로운 녹음 프로젝트가 있어서 존 던커리를 섭외하고자 했다. 당시 오디오가이 측의 요청으로 개인적으로 존 던커리에게 몇 차례 의뢰 요청 메일을 쓰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스케쥴 문제로 결국 한국에서 그가 녹음할 수 있는 기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만약 그가 한국에 와서 또 하나의 멋진 데카 사운드의 녹음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굉장히 놀랍고도 훌륭한 한국발 명반이 탄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그가 한국에서 녹음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한번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명훈의 지휘로 서울시향이 만프레드 교향곡을 존 던커리의 녹음으로 완성된다면 어떤 사운드의 음반이 될까? 샤이와 RCO의 이 음반을 능가하는 놀라운 녹음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만해도 즐거워지는 상상이다. 

오랫만에 다시 꺼내서 들어보는 샤이와 RCO의 <만프레드 교향곡>. 얼마전 새로 개비한  시스템에 스피커 케이블도 존 던커리가 만든 스튜디오 커넥션즈의 레퍼런스 스피커 케이블을 연결해보았다. 그의 녹음과 그의 케이블로 듣는 이 훌륭한 녹음은 언제 들어도 그 가치는 변함이 없다. 이 사운드가 진정 그가 원했던 사운드일까? 진정 놀랍고도 훌륭한 사운드다!

studio-connection-REF.jpg
<존 던커리가 만든 스튜디오 커넥션즈의 스피커 케이블. 현재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레퍼런스 케이블이다.>



음반을 구할 수 없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물론 2만원이 조금 안되는 다운로드 비용은 화려한 사운드로 연결해주는 데카 커넥션의 티켓값치고는 아주 저렴한 편이니 아끼지 말고 클릭해보시길.

decca.jpg